소유권확인
87가단368
판시사항
촌락공동체가 그 명의로 토지사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 이후 권리능력없는 사단의 실체를 상실하여 그 토지소유권이 국가에 귀속하였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촌락공동체인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자곡리가 1911.7.31. 일정한 임야에 대하여 토지사정을 받았다 하더라도 1963.1.1. 위 자곡리가 서울특별시로 편입된 이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위 자연부락인 촌락공동체의 실질이 해체되고 도시화 이전부터 위 부락에 거주하던 주민들 사이에서 친목회만이 남아 있다면 위 부동산은 위 촌락공동체의 해체.소멸과 동시에 무주부동산이 되어 민법 제252조 제2항에 의하여 국유로 되었다 할 것이다.
참조조문
민법 제252조 제2항
판례 전문
【원 고】 자곡리【피 고】 대한민국【주 문】 1. 이 사건 소를 각하한다. 2. 소송비용은 소외 박성안의 부담으로 한다.【청구취지】 별지목록 기재 부동산이 원고의 소유임을 확인한다.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는 판결.【이 유】 1. 원고는 이 사건 청구원인으로서, 청구취지 기재 부동산은 자연부락이던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자곡리의 속칭 "못골"주민들이 부락공동체 소유로서 총유하던 미등기부동산인데 "자곡리"명의로 1911.7.31. 토지사정받은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위 부락 공동체가 위 부동산을 소유, 관리하여 왔으므로 그 소유권보존등기를 경료받고자 이 사건 소유권확인의 소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2. 그런데 원본의 존재 및 그 진정성립에 관하여 다툼이 없는 갑 제5호증(임야대장 사본)의 기재에 의하면, 1911.7.31. 위 부동산에 관하여 "자곡리"명으로 토지사정받은 사실은 이를 인정할 수 있으나, 위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자곡리가 행정구획상 1963.1.1. 서울특별시 성동구 자곡동으로 편입되었다가 1975.10.1. 서울특별시 강남구 세곡동 제9통 및 제10통으로 재편성된 사실 및 위 부락에 대한 취락구조개선사업이 1985.3.14. 계획되어 1985.10.1. 시행된 사실 및 위와 같이 위 부락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고 또한 취락구조개선사업의 실시로 도시화되면서 이를 전후하여 위 부락에 대대로 살아오던 주민(이하 편의상 원주민이라 칭한다)들이 급격히 위 부락을 떠나 외지로 전출하여 가고 새로이 외지에서 위 부락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입해 온 사실등에 관하여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는 이 사건에서, 과연 자연부락이던 위 "자곡리" (보다 구체적으로는 자곡리 중 "못골마을", 위 자곡리는 당초 못골마을과 쟁골마을이라 불리우던 서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2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었음은 당사자들 사이에 다툼이 없다)가 촌락공동체로서 권리능력없는 사단의 실체를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 보존해 오면서 위 토지를 소유, 관리하여 왔는가에 관하여 하나 하나 살펴보기로 하다. (가) 먼저 위 촌락공동체의 구성원 및 구성원자격에 관하여 보건대, 원고 소송대리인은 1987.5.29.자 및 1987.9.24.자 및 1987.11.19.자 준비서면에서 위 촌락공동체의 구성원은 위 부락에 거주하는 원주민의 성인남녀로서 1세대당 1명씩이 주민총회(또는 "대동회")에 참가할 자격을 갖는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다가 1987.12.18.자 준비서면에서는 위 부락에 거주하는 성인의 남녀로서 원주민인 여부에 관계없이 1세대당 1명씩이 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며 위 부락에서 타지로 전출함으로써 당연히 구성원의 자격이 상실되고 외지에서 위 부락에 전입함으로써 자동적으로 구성원의 자격이 생긴다고 진술하고 있어 전후모순되고 있을 뿐 아니라, 공문서인 을 제3호증의 2(사실조회회신)의 기재에 의하면, 위 못골마을에 거주하는 세대수는 취락구조개선사업시행 전인 1984. 말경에는 모두 232세대였으나 취락구조개선사업이 종료한 1987.7.22. 현재로는 1987.1.1. 이후 외지에서 전입해 온 세대를 제외하고도 모두 103세대가 됨을 인정할 수 있음에 반하여, 원고 소송대리인이 제출한 갑 제2호증(회의록)의 기재에 의하면, 1986.8.31. 원고가 주장하는 위 공동체의 구성원의 숫자가 전부 64명이라 기재되어 있고, 같은 제3호증(회의록)의 기재에 의하면, 1984.11.30. 그 구성원의 숫자가 75명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원고 소송대리인이 신청한 증인 김현구의 증언에 의하면 원주민 세대만이 위 공동체를 구성하며 그 세대수는 현재 약 54가구라는 취지의 증언을 하고 있고, 같은 증인 이광업의 증언에 의하면 취락구조개선사업 시행전 못골에 거주하던 세대수는 약 220세대 가량인데 그중 원주민이 약 100세대 가량되었고 취락구조개선사업시행 후는 원주민이 다수가 타지로 전출하여가서 현재 약 50세대 가량만이 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어 있으며 외지로부터의 전입자는 동조계에 가입하지 아니한 반면 타지로 전출하여 나가 있는 사람들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원주민과 함께 총회에 참석한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같은 증인 김오식의 증언에 의하면 동인은 4대조 때부터 위 부락에 거주하여 오다가 1986.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으로 전출하여 갔는데도 여전히 원고가 주장하는 공동체의 구성원("계원"이라 표현함)의 1인이라고 증언하고 있어, 원고 소송대리인이 제출한 앞서의 각 서증 및 증인들의 증언 기타 일체의 증거에 나타난 전취지는 결국 대대로 위 못골에 거주하여 왔던 사람은 근년에 타지로 전출하여 갔거나 현재까지 위 부락에 계속 거주하고 있거나의 여부에 상관없이 1세대당 성인 1명씩 원고 소송대리인이 주장하는 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된다는 취지가되어, 원고 소송대리인이 주장하는 위 공동체는 결국 그 실질이 조합적 성격을 갖는 친목회 또는 향우회에 귀착한다 할 것이다. (나) 다음으로 원고가 주장하는 위 공동체의 대표자에 관하여 보건대, 원고 소송대리인은 위 부락이 서울특별시에 편입되기 전에는 위 자곡리의 이장(이장)이 위 공동체의 대표자였다가 서울특별시 강남구 세곡동 제9통 및 제10통으로 편입된 후에는 주민회의에서 선출하는 통장이 위 공동체의 대표자가 된다고 진술하고 있으나, 원고 소송대리인 스스로도 당초 위 자곡리에는 못골마을 이외에도 쟁골마을이 있었음을 시인하고 있어 자곡리의 이장이 당연히 위 못골마을의 대표자가 된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앞서 인용한 증거들 및 변론의 전취지에 의하면 위 못골마을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된 이래 외부에서 전입해온 이주민이 주민의 과반수가 넘고 있음이 엿보이는 오늘날에 있어서, 원고 소송대리인이 제출한 갑 제3 및 4호증(각 회의록)의 기재만으로는 원주민만이 모인 주민회의에서 통장을 선출한다는 원고의 주장을 선뜻 믿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제9통장과 제10통장 사이에서 누가 위 부락의 대표자가 되는지도 불분명하여, 설혹 위 부락이 도시화가 되기 이전에 위 공동체에 대표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서울특별시에 편입된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위 공동체에 대표자가 있어 그 공동체의 재산관리 등의 사무를 집행하여 왔다고는 보기 어렵다 할 것이다. (다) 다음 위 공동체의 재산소유관계에 관하여 보건대, 원고 소송대리인은 "자곡리" 또는 "자곡동"명의로 토지사정받은 토지는 이 사건 부동산외에도 자곡리 9전(현재 서울 강동구 문정동 429 및 429의 1)과 자곡리 12하천(현재 문정동 432 및 432의1) 및 자곡리 13전(현재 문정동433)과 자곡리 31 임야(현재 문정동 445 및 445의2)가 있었으나 부락총회의 결의에 따라 1939.11.1. 당시 마을 이장이던 소외 김성원에게 동인이 2년간 이장직을 맡으며 수고한데 대한 보수로서 위 부동산을 모두 동인에게 무상양도하였다고 주장하고 있고, 공문서인 갑 제17호증(인낙조서정본, 소외 김정산이 위 김성원으로부터 위 각 부동산을 다시 매수하였음을 이유로 하여 위 김성원을 상대로 이전등기절차이행을 구하고 위 김성원이 이를 1984.2.7. 전부 인낙하였다는 취지) 및 같은 갑 제19호증의 1 내지 7(각 등기부등본, 위 김정산이 위 인낙조서등본을 근거로 위 김성원을 대위하여 위 김성원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신청을 하여 1986.8.25. 그 신청대로 소유권보존등기되어 있으나, 위 보존등기는 부동산등기법상의 적법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절차위배의 등기이다) 및 을 제5호증의 1 내지 5 (각 구 토지대장, 자곡동 명의로 위 토지들이 토지사정되었다는 취지의 기재가 있다)의 각 기재도 원고 소송 대리인의 위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하나, 한편 원고 소송대리인의 위 주장 및 위 거시의 증거들에 의하면, 위 못골마을이 서울특별시로 편입되면서 서울 강남구 세곡동 제9통 및 제10통으로 편입되는 외에도 서울 강동구 문정동 등으로도 편입되어 결국 못골마을의 단일성이 분산, 해체되어버린 사실도 엿볼 수 있으며, 또한 원고 소송대리인이 주장하는 부락공동체가 당초에는 수필의 총유부동산을 보유하고 있었을지라도 그 총유재산의 대부분이 불과 2년간의 이장직 수행에 대한 대가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1911년 이래 이장직을 수행했던 사람이 무수히 많았음을 상기해 볼때 석연치 아니함) 소외 김성원에게 무상양도되었다 하여 도시화가 이루어진 이후인 1986년 동인 명의로 소유권보존등기가 되어버린 현재에 이르러서는 이 사건 부동산외에는 원고 소송대리인이 주장하는 위 공동체가 아무런 재산을 보유하고 있지 아니함도 동시에 엿볼 수 있다(이 사건 부동산도 후술하는 바와 같이 이미 타인에게 매각되어 버렸다). (라) 다음으로 이 사건 부동산(토지)의 이용관계에 관하여 보건대, 공문서인 갑 제6호증의 1 내재 3(각 토지대장)의 기재에 의하면 위 토지 중 세곡동 421은 임야로, 세곡동 421의1은 공원으로, 세곡동 421의2는 도로로 지목이 기재되어 있으나, 원고 소송대리인은 위 부동산이 해방후부터 어린이놀이터로 사용되다가 1958년경부터 1978년경까지는 퇴비장, 이발소부지, 방범초소부지 또는 놀이터로 사용되었으나 1978년 이후로는 서울특별시가 건립한 녹지관리초소부지로 사용되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으며, 나아가 1987.4.24.자 및 1987.7.10.자 준비서면의 기재에 의하면 원고 소송대리인이 주장하는 위 부락공동체가 위 토지를 소외 박성남에게 금 5,000,000원에 매도하여 그 대금을 받아 종래 대대로 위 부락에 거주하던 원주민들의 친목단체기금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진술하였다가 1987.11.19.자 준비서면에 이르러서는 그 대금으로 부락마을회관건립을 현재 고려중이라고 번복 진술하고 있는 바, 위 각 진술에 의하면 위 토지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락공동체의 총유적 이용에 공하여져 왔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 소송대리인이 주장하는 위 공동체가 현재 부락회관을 건립할 어떠한 토지도 더이상 보유하고 있지 아니하고 있는 사정에 비추어 볼때 위 토지의 매각대금으로 부락회관을 건립한다거나 그밖에 위 매각대금으로 외지에서 전입하여 온 주민들도 포함한 전체주민의 영속적 공동체인 위 부락민들의 총유적 이익을 위하여 사용된다고도 보기 어렵다 할 것이다. 3. 과연 그렇다면, 앞서 본 모든 사정들을 종합하여 볼때 이 사건 부동산은 당초에는 부락공동체인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자곡리의 못골주민이 총유하던 부동산으로서 "자곡리"명의로 토지사정을 받았으나 위 부락이 1963.1.1. 서울특별시로 편입되면서 자연부락인 위 못골마을의 부락공동체가 서서히 해체되어 오던 중 1985년 및 1986년경의 취락구조개선사업을 거치면서 급격히 도시화가 진행되어 이 사건 제소시인 1987년에 이르러서는 위 자연부락이 해체됨과 동시에 부락공동체도 완전히 해체되고 다만 위 못골마을의 원주민으로서 근년에 위 부락에서 타지로 전출하였거나 현재까지 위 부락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합적 성질을 가지는 친목회 또는 향우회만이 결성되어 남아있다 할 것이므로(따라서 이 사건 부동산은 위 부락공동체의 해체, 소멸과 더불어 무주부동산이 되어 민법 제252조 제2항에 의하여 국유로 되었다 할 것이다), 위 못골마을의 부락공동체가 현재도 권리능력없는 사단의 형태로 남아있음을 전제로하는 이 사건 소는 당사자능력이 없는 자가 제기한 소로서 부적법함이 명백하여 각하함이 상당하고, 소송비용은 민사소송법 제98조에 의하여 원고대표자로 제소한 소외 박성안의 부담으로 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배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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