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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례서울지법판결 : 항소2003. 8. 14. 선고

손해배상(기)

2002가합32467

판시사항

[1] 비밀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의 위법행위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국가가 그 위법을 알 수 없었던 피해자에 대하여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2] 국가안전기획부가 살인사건의 진실을 은폐, 조작한 경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는 피해자들이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게된 때로부터 그 기간이 개시된다고 판단한 사례

판결요지

[1] 국가로서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까닭에 국민은 국가를 믿고 국가가 취한 조치가 적법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데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와 같이 국가를 믿은 것에 어떠한 잘못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이어서 국가에 의한 어떤 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국민이 자진해서 국가의 행위에 대하여 위법을 문제삼고 그에 대해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고, 국가도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이러한 기대와 신뢰를 존중하고 그에 상응하기 위하여 국가의 위법한 조치로 인한 결과에 의하여 이미 형성된 생활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다가 비밀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의 위법행위가 외부에서 거의 알아보기 힘든 경우에 일반 국민으로서는 국가의 그와 같은 조치에 전적인 신뢰를 둘 수밖에 없는 실정이며 더구나 위법행위를 한 국가가 그 위법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와서 그 위법을 몰랐던 피해자들에 대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신의칙상 또는 형평의 원칙상 도저히 허용될 수 없다.[2] 국가안전기획부가 살인사건의 진실을 은폐, 조작한 경우 이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의 소멸시효는 피해자들이 살인사건의 진실을 알게된 때로부터 그 기간이 개시된다고 판단한 사례.

참조조문

[1] 민법 제2조, 제766조 / [2] 민법 제2조, 제766조

판례 전문

【원 고】 원고 1 외 9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창조, 해마루 담당변호사 이기욱 외 6인)【피 고】 대한민국 외 1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하나 담당변호사 최종우 외 3인)【변론종결】 2003. 7. 24.【주 문】1. 피고들은 각자 원고 1, 원고 2에게 각 300,000,000원, 원고 33, 원고 4, 원고 5, 원고 6에게 각 200,000,000원, 원고 7, 원고 8, 원고 9, 원고 10에게 각 700,000,00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2002. 6. 6.부터 2003. 8. 14.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금원을 지급하라.2.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각 기각한다. 3. 소송비용 중 1/2은 원고들의, 나머지는 피고들의 각 부담으로 한다. 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 【청구취지】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 1, 원고 2, 원고 3, 원고 4, 원고 5, 원고 6에게 각 440,000,000원, 원고 7, 원고 8, 원고 9, 원고 10에게 각 1,300,000,00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20%의 비율로 계산한 금원을 지급하라. 【이 유】 1. 기초사실 다음의 각 사실은 갑 제1, 2호증, 갑 제3호증의 1, 2, 갑 제4 내지 6호증, 갑 제12호증, 갑 제13호증의 1 내지 7, 갑 제14호증의 1 내지 6, 갑 제16호증의 1 내지 3, 갑 제17호증의 1 내지 18, 갑 제18호증의 1, 2, 갑 제28호증, 갑 제30호증의 각 기재 및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이를 인정할 수 있다. 가. 피고 2는 1987. 1. 3. 홍콩 소재 넛츠포드 테라스 로드 낙복아파트 13에이(13A Knutsford Terrace, 9/f, Tsim Sha Tsui)에서 그 처인 망 소외 11(일명 '소외 12' 이하 '망인' 이라고 한다)과 다투던 중 불상의 둔기로 망인의 이마와 뒷통수를 2회 때려 망인을 쓰러뜨려 망인이 실신하자 그 곳에 있던 베갯잇을 망인의 머리에 씌운 다음 자신의 여행용 트렁크 가방을 묶는 '청색/적색/청색' 무늬의 캔버스 벨트를 망인의 목에 감아 1회 매듭을 지은 다음 양손으로 벨트의 양끝을 잡아 1회 감아 쥔 후 양손으로 잡아 당겨 망인의 목을 졸라 살해하였다(이하 '홍콩살인사건' 이라고 한다). 나. 피고 2는 망인을 살해한 후 책임을 모면하기 위하여 1987. 1. 5. 싱가포르로 가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관에 찾아가 월북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게 되자 다시 싱가포르 주재 미국대사관을 찾아갔으나, 미국대사관측은 피고 2의 신병을 싱가포르 주재 한국대사관에 인계하였다. 다. 싱가포르 주재 한국대사관 국가안전기획부(후에 국가정보원으로 명칭을 변경) 소속 파견관인 소외 13과 소외 14가 피고 2와 면담을 실시한 후 위 소외 13은 1987. 1. 6. 국가안전기획부에 북한이 피고 2를 납북시키려 했다는 취지의 전문을 보냈고, 국가안전기획부에서는 싱가포르에서 피고 2가 납북될 뻔했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하고 입국시키라는 국가안전기획부장 명의의 전문을 보냈으며, 국가안전기획부 부국장인 소외 15는 피고 2의 기자회견을 감독하기 위하여 싱가포르로 출장을 왔는데, 위 소외 15와 소외 13은 다시 피고 2를 면담하고 피고 2의 현지 동향을 검토하던 중 피고 2가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관에 월북을 위하여 망명신청을 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을 뿐만 아니라 피고 2의 납북 관련 진술이 일관성이 없어 이를 믿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국가안전기획부에 기자회견이 부적절하다는 건의가 담긴 전문을 보냈으나, 국가안전기획부는 기자회견을 보류하라는 지시를 하였다가 다시 기자회견을 강행하라는 지시를 하였다. 라. 국가안전기획부의 지시에 따라 위 소외 15는 1987. 1. 8. 피고 2를 방콕으로 데리고 가 연합신문과 인터뷰를 한 후 다음날인 1987. 1. 9. 피고 2를 데리고 김포공항에 입국하여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그 내용은 '피고 2가 동거하던 북한공작원인 망인과 조총련계 공작원에 의하여 납치될 뻔하다가 탈출하였다.'는 것이었고 위 기자회견은 1987. 1. 8.부터 같은 달 10.까지 KBS 9시 뉴스에 방송되었다. 마. 국가안전기획부에서는 위 기자회견을 마친 후 피고 2를 심문하였는데, 그 결과 피고 2로부터 '사실은 자신이 망인을 살해하고 이를 모면하기 위하여 북한 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미국 대사관을 거쳐 한국 대사관으로 와서 북한공작원에 의하여 납북될 뻔하였다는 허위 내용으로 기자회견을 하였다.'는 내용의 자백을 받아내고, 국가안전기획부 대공수사국 수사3과장 소외 17이 당시 수사에 참여하였던 대공수사국 수사3계장 소외 16으로부터 위와 같은 자백 내용을 보고받아 이를 대공수사국 수사1단장 소외 18에게 보고하였다. 바. 국가안전기획부 대공수사국장 소외 21은 위 소외 18로부터 피고 2가 망인을 살해하고 북한으로 도망하려 했음에도 납치 자작극을 벌였다는 수사결과를 보고받은 후 국가안전기획부 국내파트 1차장 소외 19와 국가안전기획부장 소외 20에게 이를 보고하면서 이미 피고 2가 납북미수 내용의 기자회견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취지의 건의를 하였고 이에 따라 위 소외 19와 소외 20은 홍콩살인사건에 대하여 수사종결을 지시하였다. 사. 그 후 국가안전기획부에서는 피고 2가 망인을 살해하였고 또한 망인이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언론에 대해서는 피고 2가 여전히 반공투사이고 북한 공작원인 망인의 유인에 의하여 북한으로 납치될 뻔한 것으로 설명하고, 홍콩 경찰에 대해서는 홍콩살인사건을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남·북한간의 정치적 사건임을 강조하여 수사에 협조하지 말도록 하며, 망인의 가족들에 대해서는 망인이 간첩인 것처럼 상정하여 조사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이를 실행하였다. 아. 1987. 1. 26. 망인의 시신이 발견되자 홍콩 경찰은 피고 2를 홍콩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국가안전기획부에 수사 협조 요청을 하였으나 국가안전기획부에서는 대공사건임을 이유로 거절한 채 피고 2에게 충분한 세뇌교육, 보안교육으로 변절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될 때 주거제한, 출국금지 등의 조치를 강구한 후 방면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하고 위와 같은 조치를 취한 후 1987. 4. 초순경 피고 2를 석방하였는데, 국가안전기획부는 그 후에도 계속적으로 피고 2에 대한 동향파악을 하였다. 자. 망인의 오빠인 망 소외 1은 2000. 3. 9. 피고 2를 서울지방검찰청에 고소하였고, 피고 2는 2001. 11. 13. 망인에 대한 살인죄 등으로 기소되어 2003. 5. 30.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이 선고, 확정되었다. 차. 한편, 원고 2는 위 망 소외 1(2000. 7. 26. 사망)의 처이고 원고 5, 원고 6은 그 자녀들이며, 원고 1은 망인의 언니인 망 소외 2(1987. 11. 20. 사망)의 남편이고, 원고 3, 원고 4는 그 자녀들이며, 원고 7, 원고 8, 원고 9, 원고 10은 망인의 동생들이다. 2.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가.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피고 대한민국 소속 국가안전기획부는 국가기관으로서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피고 2와 공동하여, 망인이 피고 2에 의해 살해되었고 또한 망인이 북한 공작원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남북관계 등을 고려한다는 명목하에 진실을 은폐, 조작함으로써 망인의 가족인 원고들에게 간첩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씌우고 또한 망인의 죽음의 진상을 밝혀 내고 법적 절차에 호소하여 망인의 원한을 풀어 줄 기회를 박탈하여 원고들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였으므로, 피고들은 각자 원고들에게 위와 같은 진실 은폐, 조작행위로 인하여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할 것이다. 나. 소멸시효 주장에 대한 판단 (1) 피고들의 주장 피고들은, 이 사건 청구는 피고 2가 망인을 살해한 날 또는 국가안전기획부에서 피고 2를 석방한 날로부터 이미 10년이 경과한 후에 제기된 것으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한다. (2) 판단 살피건대, 국가로서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까닭에 국민은 국가를 믿고 국가가 취한 조치가 적법하게 이루어졌을 것이라는데 대해서 의심을 하지 아니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와 같이 국가를 믿은 것에 어떠한 잘못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할 것이어서 국가에 의한 어떤 조치가 있기 전까지는 국민이 자진해서 국가의 행위에 대하여 위법을 문제삼고 그에 대해서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것은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고, 국가도 국민의 국가에 대한 이러한 기대와 신뢰를 존중하고 그에 상응하기 위하여 국가의 위법한 조치로 인한 결과에 의하여 이미 형성된 생활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할 수 있는데다가 비밀 업무를 담당하는 국가기관의 위와 같은 위법이 외부에서 거의 알아보기 힘든 경우에 일반 국민으로서는 국가의 그와 같은 조치에 전적인 신뢰를 둘 수밖에 없는 실정이며 더구나 위법행위를 한 국가가 그 위법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 와서 그 위법을 몰랐던 원고들에 대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한다는 것은 신의칙상 또는 형평의 원칙상 도저히 허용될 수 없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 대한민국 소속 국가안전기획부는 피고 2와 공동하여 홍콩살인사건의 진실을 은폐, 조작함으로써 원고들로서는 국가안전기획부와 피고 2가 공동하여 홍콩살인사건의 진실을 은폐, 조작한 사실을 홍콩살인사건이 발생한 날로부터 약 15년이 경과한 2001. 11. 13. 피고 2가 기소된 후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음은 앞서 본 바와 같고, 원고들이 2002. 5. 24.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음은 기록상 명백한바, 앞서와 같은 법리에 비추어 볼 때 피고 대한민국이 홍콩살인사건에 대하여 진실을 은폐, 조작하다가 이제 와서 홍콩살인사건의 진실을 알지 못했던 원고들에게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상 또는 형평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고 보아야 하므로 이 사건 청구에 대한 소멸시효는 원고들이 홍콩살인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2001. 11. 13.부터 그 기간이 개시되는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니 결국 피고들의 소멸시효 주장은 이유 없다. 3.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가. 원고들이 입은 피해 다음의 각 사실은 갑 제8호증, 갑 제22, 23호증, 갑 제24, 25호증의 각 1, 2, 갑 제26호증, 갑 제27호증, 갑 제29호증의 2의 각 기재 및 변론의 전취지를 종합하면 이를 인정할 수 있다. (1) 원고 1, 원고 3, 원고 4 (가) 위 망 소외 2는 1987. 당시 실질적인 가장으로서 전매청에 다니고 있었으나 망인이 간첩이라고 발표된 후 전매청에서 해직되었고, 해직과 동생이 간첩이라는 충격으로 인하여 망인 사망 후 정신이상이 되었으며 1987. 11. 20. 사망하였다. (나) 위 망 소외 2의 남편인 원고 1은 아내인 위 망 소외 2 사망 후 술만 마시며 지내다가 1988. 위 망 소외 2의 제사상을 보러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원주기독병원에서 뇌수술을 받고 1년간 입원하여 치료를 받은 후 폐인이 되었다. (다) 결국 위 망 소외 2의 가족들인 원고 1, 원고 3, 원고 4는 홍콩살인사건 이후 약 15년 동안 계속되는 불행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되었고, 간첩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취업도 못한 채 궁핍한 상태에서 어렵게 생활하여 왔다. (2) 원고 2, 원고 5, 원고 6 (가) 원고 2의 남편인 위 망 소외 1은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후 간첩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은 후 술만 마시며 지내다가, 피고 2를 고소한 후 피고 2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자 이를 괴로워하다 2000. 7. 26. 교통사고로 사망하였다. (나) 위 망 소외 1의 아들인 원고 5는 당시 중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망인이 간첩이라는 언론의 보도 이후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는 등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였고 간첩의 가족이라는 주위의 눈총 때문에 1987. 12. 29. 이모인 원고 9가 살던 울산의 충일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시댁 식구들로부터 모진 핍박을 받던 원고 9의 고통을 지켜보다가 결국 울산에서도 적응을 하지 못하고 학교를 자퇴하였다. (다) 위 망 소외 1과 그 가족들인 원고 2, 원고 5, 원고 6은 간첩집안으로 낙인찍혀 결국 이사를 가게 되고 국가안전기획부 직원들과 주변인들의 시선으로 인하여 엄청난 고통을 당하였다. (3) 원고 7 (가) 원고 7은 소외 3과 동거를 하여 딸 소외 4를 낳고 1979. 3. 19. 위 소외 3과 혼인신고를 하여 동네에서 조그만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살고 있었는데, 망인이 간첩이라는 언론 보도 이후 손님들이 계속해서 원고 7, 위 소외 3에게 망인에 대해 물어보아 이를 견디다 못해 이발소 문을 닫게 되었으며, 원고 7은 이후 위 소외 3의 폭력과 시댁 식구들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결국 1987. 9. 29. 위 소외 3과 이혼을 하게 되었다. (나) 또한, 원고 7은 소외 3과 이혼한 후 간첩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호적등본이나 이력서를 제출하여야 하는 정규직 노동을 할 수 없어 파출부나 날품팔이 등의 일을 하면서 혼자 소외 4를 양육하는 상황에 처해져 빈곤한 생활을 하다가, 그 후 소외 3과 재결합하였으나 시댁 식구들의 시달림을 견디지 못하여 다시 1998. 12. 24. 이혼을 하고 현재 보증금 200만 원, 월세 25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소외 4와 함께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다) 한편, 원고 7은 소외 3의 폭력으로 인하여 코뼈가 주저 앉고 팔을 잘 사용하지 못하게 되어 무거운 것을 드는 것도 힘들어하는 형편이고, 결국 홍콩살인사건 이후 약 15년 동안 고통을 겪으면서 자신의 혼인관계와 시댁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폭력을 당한 이후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는 것조차 혐오스럽게 생각하게 되었고 소외 4에게까지도 자신의 고통이 대물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하여 홧병을 얻었고 이유 없이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는 등의 노이로제에 시달리고 있다. (4) 원고 8 (가) 원고 8에게 있어서 망인은 부모와 같은 존재로서 교육(미용교육 및 검정고시 준비)을 비롯하여 결혼도 책임지고 있었는데, 원고 8은 망인으로부터 홍콩에서 함께 살자는 부탁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귀국하여 소외 5와 결혼을 한 이후 그 때 자신이 망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면 망인이 억울하게 사망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라는 죄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다. (나) 또한 원고 8은 망인과 오랫동안 같이 살았기 때문에 국가안전기획부의 감시가 특히 심했고, 망인과 외모가 비슷하여 주변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아 외출을 거의 하지 못하였으며, 홍콩살인사건 직후 남편인 소외 5, 3살 된 아들과 함께 국가안전기획부로 끌려가 직접 조사를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국가안전기획부는 홍콩 소재 망인의 집을 한번 조사해 달라는 제의를 묵살하고 망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간첩취급을 하였으며 소외 5에게 망인의 사생활과 원고 8의 사생활을 연결시켜 성에 대한 폭력적인 언행을 하면서 원고 8과의 이혼을 강요하여 결국 소외 5로 하여금 이혼을 하겠다는 진술을 하도록 만들었고 조사 이후에도 전화를 도청하는 등 감시를 계속하였다. (다) 홍콩살인사건 이후 당시 민정당 당원이었던 원고 8의 시숙이 자살을 하였고 이로 인하여 원고 8은 시댁으로부터 이혼을 강요당하면서 핍박을 받았으며 소외 5는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방황의 나날을 보냈으며 계속적인 음주로 인하여 급기야는 당뇨병에 걸려 지금까지 고생을 하고 있다. (라) 당시 망인의 사생활에 대하여 선정적인 보도가 행해짐으로써 원고 8은 시댁식구들로부터 망인과 홍콩에서 오랫동안 같이 생활했기 때문에 문란한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여겨졌고 또한 간첩 취급을 당하였으며, 결국 원고 8은 홍콩살인사건 이후 약 15년 동안 고통을 겪으면서 신경쇠약증, 대인기피증, 자살기도,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다. (5) 원고 9 (가) 원고 9의 시숙은 울산의 유지로 그 지역에 학교를 설립하려고 하였는데, 망인이 간첩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시댁 식구들은 원고 9에게 망인의 사생활 등을 문제 삼아 욕을 하고 원고 9를 밀치거나 몸을 때리는 등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가하였고, 원고 9가 1986. 12.경 소외 6과 결혼한 직후에 망인이 북한 공작원이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시댁 식구들은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게 하고 원고 9에게 집에서 나갈 것을 종용하였으며 이후 비록 원고 9가 1987. 3. 27. 소외 6과 혼인신고를 하였으나 이후 약 2년 동안 집에서 쫓겨나 절에서 생활하다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생활을 하다가 결국 1995. 1. 16. 소외 6과 이혼을 하였다. (나) 그 후 원고 9가 1996. 8. 14. 소외 7과 재혼하면서 소외 6이 아들인 소외 8을 양육하기로 하였는데, 소외 6의 가족들이 소외 8로 인하여 연좌제의 피해를 입을까 우려하여 소외 8을 경주에 있는 절에 버리는 바람에 소외 8은 약 8년 동안이나 절에서 키워졌고 이로 인하여 소외 8은 교육기회를 박탈당하였다. (다) 한편, 2000. 이후 홍콩살인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재혼한 시댁 식구들에게 원고 9가 망인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원고 9는 시댁 식구들로부터 이혼을 강요당하는 등 온갖 핍박을 받았고 결국 원고 9는 홍콩살인사건 이후 약 15년 동안 고통을 겪으면서 신분노출을 꺼리는 등 자기정체성을 부정하고 사람에 대한 공포, 정신적인 스트레스, 대인공포증, 의욕 상실에 빠져 있다. (6) 원고 10 (가) 원고 10은 망인이 간첩이라는 것이 언론에 보도될 무렵 고등학교 졸업반이었는데 이로 인하여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졸업장을 받으러 학교에 갈 수 없어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하였고, 그 후 원고 10은 오빠인 위 망 소외 1과 어머니인 망 소외 9와 함께 살다가 서울에 있는 원고 8의 집으로 갔으나 그 곳에서도 원고 8의 시댁 식구들로부터 모진 핍박과 학대를 받았다. (나) 원고 10은 1992. 10. 12. 소외 10과 결혼을 하였으나 언니들의 이혼으로 인하여 원고 10의 가족사를 알게 된 위 소외 10으로부터 폭행을 당하였을 뿐 아니라 딸에게까지 폭행이 행해져 그 딸이 현재까지도 한쪽 귀가 안 들리는 상황이고 자폐증 증상까지 보이고 원고 10 또한 소외 10의 폭행으로 인하여 허리를 잘 쓰지 못하게 되었다. (다) 원고 10은 소외 10의 폭행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딸과 함께 집을 나와 절에서 생활을 하였으나 소외 10이 조직 폭력배를 이끌고 찾아와 원고 10의 가족들에게 엄청난 협박을 하였고, 결국 원고 10은 소외 10과 이혼을 한 후 재혼을 하게 되었으나 재혼한 시댁 식구들이 원고 10의 가족사를 알게 되어 시댁 식구들로부터 학대에 시달리게 되었다. (라) 결국, 원고 10은 홍콩살인사건 이후 약 15년 동안 고통을 겪으면서 정서 불안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 생활 자체에 대한 공포로 현재도 산중 생활을 하고 있고,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삶에 대한 의욕 상실, 위 소외 10으로부터 받은 폭행으로 인하여 사람에 대한 공포가 극에 달하여 사람만 보면 떠는 등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고 있다. 나. 손해배상액 산정 피고 대한민국은 국민의 안전을 보호할 의무가 있음에도 조직적으로 국가권력을 이용하여 피고 2에 의해 살해된 망인을 간첩으로 조작하고 살인범인 피고 2를 오히려 반공투사로 만듦으로써 망인의 가족들인 원고들이 망인의 사망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고통을 받았을 것임에도 이에 더하여 우리 나라와 같은 남북분단 상황하에서 간첩의 가족으로 몰려 약 15년 동안 겪었을 신분상의 불이익과 이에 따른 경제적 궁핍 및 앞서 본 바와 같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사정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을 참작하면, 위자료로 원고 1, 원고 2는 각 300,000,000원, 원고 3, 원고 4, 원고 5, 원고 6은 각 200,000,000원, 원고 7, 원고 8, 원고 9, 원고 10은 각 700,000,000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 4. 결론 그렇다면 피고들은 각자 원고 1, 원고 2에게 각 300,000,000원, 원고 3, 원고 4, 원고 5, 원고 6에게 각 200,000,000원, 원고 7, 원고 8, 원고 9, 원고 10에게 각 700,000,000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하여 이 사건 소장부본 최종 송달 다음날인 2002. 6. 6.부터 이 사건 판결 선고일인 2003. 8. 14.까지는 민법에서 정한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등에관한특례법에서 정한 연 20%의 각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원고들의 이 사건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이를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이유 없어 이를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지대운(재판장) 채윤주 정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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