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배상(기)
2005가합88966
판시사항
[1] 수사공무원들이 대공수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피해자를 불법구금한 후 각종 고문을 하여 피해자로 하여금 위장귀순하여 고정간첩으로 활동해 왔다는 내용의 허위 자백을 하도록 하고, 피해자가 간첩임을 전제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장기간 복역하게 한 경우, 국가와 수사공무원이 연대하여 피해자 및 그 가족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한 사례(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 7억 원, 피해자의 처에 대한 위자료 : 4억 원, 피해자의 자녀들에 대한 위자료 : 각 1억 원)[2] 수사공무원들의 고문 등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 등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으나, 국가 등이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 사례
판결요지
[1] 수사공무원들이 대공수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피해자를 연행하여 구속영장 없이 구금한 후 피해자가 위장귀순하여 고정간첩으로 활동해 왔다는 점에 관한 아무런 구체적 근거가 없음에도 피해자에게 각종 고문을 가하여 허위자백을 하도록 하고, 고문에 의한 임의성 없는 상태가 지속되도록 하여 검사의 피의자신문시에도 같은 내용의 허위자백을 하도록 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허위의 자료를 만들고, 위 고문을 주도한 수사공무원이 재판과정에서 고문을 한 바 없다는 등의 허위 증언을 함으로써 피해자가 간첩임을 전제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장기간 복역하게 한 경우, 국가와 수사공무원은 연대하여 피해자 및 그 가족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한 사례(피해자에 대한 위자료 : 7억 원, 피해자의 처에 대한 위자료 : 4억 원, 피해자의 자녀들에 대한 위자료 : 각 1억 원).[2] 수사공무원의 고문 등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국가 및 수사공무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으나, 그 불법행위의 내용과 사건의 경위 등 제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피해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심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피해자 및 그 가족들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고, 그들을 보호할 필요성이 큰 반면 국가 및 수사공무원의 채무이행 거절을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불공평하다는 이유로, 국가 및 수사공무원이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본 사례.
참조조문
[1] 민법 제750조, 제751조,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 [2] 민법 제2조, 제766조, 구 예산회계법(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것) 제71조(현행 제96조 참조)
판례 전문
【원 고】 원고 1 외 4인 (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지평 담당변호사 조용환 외 1인)【피 고】 대한민국 외 1인 (소송대리인 변호사 서재헌 외 2인)【변론종결】2006. 10. 27.【주 문】1.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 1에게 7억 원, 원고 2에게 4억 원, 원고 3, 원고 4, 원고 5에게 각 1억 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한 1984. 1. 24.부터 2006. 11. 3.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2.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3. 소송비용 중 2/3은 원고들이, 1/3은 피고들이 각 부담한다.4. 제1항은 가집행할 수 있다.【청구취지】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 1에게 30억 원, 원고 2에게 5억 원, 원고 3, 원고 4, 원고 5에게 각 1억 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한 1983. 2. 18.부터 이 사건 판결 선고일까지는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금원을 지급하라.【이 유】 1. 기초 사실 다음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 2호증, 갑 제4호증의 1 내지 3, 갑 제5호증의 2, 갑 제6호증의 29, 갑 제7호증의 1, 2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된다. 가. 원고 1은 남파 간첩이라는 혐의를 받고 1983. 2. 18. 치안본부 대공수사관들에게 연행되어 조사를 받은 끝에, 남파 간첩으로서 1954년경 위장귀순한 후 그 무렵부터 간첩활동을 해 오던 중 1973. 9.경부터 1983. 1.경까지 국가보안법위반, 반공법위반 행위를 하였다는 등 공소사실로 1983. 5. 18. 공소제기되었는데, 원고 1을 조사한 수사관들 중에는 피고 2가 포함되어 있었다. 나. 제1심법원은 1983. 9. 29.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무기징역형을 선고하였고( 서울형사지방법원 83고합531호), 항소심법원도 1984. 1. 30. 같은 결론의 판결을 선고하였으며( 서울고등법원 83노2652호, 제1심판결이 일부 범죄사실에 대하여 보강증거 없이 피고인의 자백만을 유일한 증거로 하여 사실을 인정한 위법을 범하였다는 이유로 이를 전부 파기하였으나, 결과적으로는 보강증거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다시 무기징역형을 선고하였다. 이하 ‘재심대상판결’이라 하고, 위 사건을 ‘재심대상사건’이라 한다), 위 판결은 1984. 5. 29. 원고 1의 상고가 기각됨으로써 확정되었다( 대법원 84도378호). 다. 원고 1은 위 확정판결에 따라 복역 중 20년형으로 감형된 후 1998. 8. 15. 가석방되었는데, 검찰이 1999. 12. 27. 피고 2에 대한 독직폭행 등 사건에 관하여 위 피고가 원고 1을 고문한 사실을 인정하는 내용의 처분을 하자(공소시효 완성으로 불기소되었다), 원고 1은 재심대상판결에 대하여 서울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하였고, 위 법원은 2003. 10. 28. 재심개시결정을 한 후 2005. 7. 15. 원고 1의 자백은 피고 2 등의 불법구금과 고문, 폭행 등 가혹행위로 인한 임의성 없는 것이고, 다른 증거들도 신빙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위 원고가 무죄라는 판결을 선고하였으며, 위 판결은 2005. 7. 23. 확정되었다( 2000재노16호, 이하 ‘재심판결’이라 한다). 라. 원고 2는 원고 1의 처이고, 나머지 원고들은 그 아들들이다. 2. 원고들 주장의 요지 가. 손해배상책임의 발생에 관한 주장원고 1은 재심대상사건 수사과정에서 피고 대한민국 산하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수사공무원들로부터 불법체포되고 장기간 불법구금을 당한 상태에서 위 소속 수사공무원인 피고 2에 의해 무자비한 가혹행위를 당하였고, 피고 2 등은 이를 통하여 위 원고로부터 허위 자백을 받아낸 후 이에 상응하는 각종 증거를 조작하였다. 또한, 재심대상사건을 송치받은 피고 대한민국 산하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는 위와 같은 불법수사가 이루어진 사실을 잘 알고 있었거나 알 수 있었고, 원고 1에 대한 간첩 혐의의 단초가 된 소외 1의 진술이 왜곡·과장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었으면서도, 제1회 피의자신문시 피고 2 등이 입회한 상태에서 임의성 없는 진술을 하도록 방치하고 원고 1이 주장한 불법수사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아니한 채 원고 1을 기소하였으며, 피고 2 등과 공모하여 소외 1 등으로 하여금 허위 증언을 하게 하는 등 조작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고, 고문당했다는 원고 1의 주장을 ‘법정투쟁전술’이라고 반박하고 피고 2 등의 고문행위를 은폐하며 사형을 구형하여, 위 원고가 간첩임을 전제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도록 하였다. 따라서 피고 2는 민법 제750조에 기하여, 피고 대한민국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기하여 연대하여 위 불법행위들로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나.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한 주장 (1) 원고 1의 손해피고 2 등의 불법행위로 원고 1은 수사과정에서 극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당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15년 6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하면서 그 과정에서도 상당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었으며, 석방된 뒤에도 계속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바, 위자료의 일부로 30억 원(① 대공수사관들에게 조사받은 1983. 2. 18.부터 1983. 4. 21.까지 63일 동안 1일당 1,000만 원의 비율로 계산한 6억 3,000만 원 + ② 검찰에 송치된 후 수감생활을 한 1984. 4. 22.부터 1998. 8. 15.까지 5,595일 동안 1일당 100만원의 비율로 계산한 55억 9,500만 원 중 일부로서 22억 8,700만 원 + ③ 석방된 다음날인 1998. 8. 16.부터 재심판결이 확정된 2005. 7. 23.까지 83개월 동안 1개월당 100만 원의 비율로 계산한 8,300만 원)을 청구한다. (2) 나머지 원고들의 손해 또한, 원고 1의 처 및 자녀들인 나머지 원고들도 원고 1이 당한 불법행위로 인하여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고, ‘간첩의 가족’이라는 오명으로 인하여 장기간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당하였는바, 위자료로서, 원고 2는 10억 원 중 일부로 5억 원, 원고 3, 원고 4, 원고 5는 각 5억 원의 일부로 각 1억 원씩 지급을 구한다. 3. 손해배상책임의 발생 가. 인정 사실 다음 사실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거나 갑 제1호증, 갑 제6호증의 3 내지 9, 24, 갑 제7호증의 10, 11, 13, 15, 16, 갑 제9호증의 6 내지 9, 11, 13 내지 22, 26, 31, 33, 40 내지 45, 갑 제10호증의 6, 15, 16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된다. (1) 원고 1은 한국전쟁 전 개성에서 살았었는데 전쟁 후 가족이 모두 남하하여 홀로 남겨지자 가족을 만나기 위해 남하하기 위한 방편으로 대남공작원을 자원하였고, 1954년경 남파된 후 곧바로 자수하여 위장귀순 여부에 대한 조사와 집행유예형을 받고 가족을 만나 대남공작원의 역할과는 무관하게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며 생활해 왔다(1967년경에는 정보기관의 요시찰 대상에서도 해제되었다). (2) 1980. 5.경 북한에서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체포된 소외 1로부터 다른 남파 간첩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정보기관에서는 ‘개성에 살던 소외 2라는 교원의 남편이 1950년대에 간첩으로 남파되었는데 그는 전쟁 중에 한쪽 눈을 다쳐 실명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첩보를 입수하였고, 이에 치안본부 대공수사과에서 장기간 내사를 벌인 결과 원고 1이 개성 출신으로서 한쪽 눈을 실명한 상태이고 1954년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처벌받은 전력이 있으며 소외 2와도 관련이 있다는 사실(원고 1이 남파 직전 수개월간 하숙한 집의 딸로, 위 원고가 남파 당시 애인으로 지칭하였다)을 확인한 후 원고 1에 대한 미행과 행적수사 등을 계속하여 왔다. (3) 그러던 중 치안본부 대공수사관들은 1983. 2. 18. 서울 종로구 연지동 소재 기독교회관 앞 노상에서 아무런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원고 1을 강제로 차에 태워 서울 용산구 갈월동 98 소재 대공수사단 5층 조사실(일명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한 후, 간첩혐의자에 대하여는 장기간의 회유와 여타 연계조직에 대한 수사를 위하여 임의동행 형식으로 수사기관에 보호조치하는 것이 대공수사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발부받지 아니한 채 위 원고를 구금하고 있으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차단하였다. (4) 그러나 수사기록상으로는 1983. 3. 24. 위 원고를 검거하였다는 내용으로 검거보고서를 작성하였고, 1983. 3. 31. 구속수사하라는 국가안전기획부장의 신병처리조종과 그 후 검사의 구속수사지휘를 거쳐 구속영장이 청구되었으며, 이에 따라 원고 1은 1983. 4. 4.에 이르러서야 서울형사지방법원 판사의 구속영장에 의하여 용산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되었는데(남영동 대공분실에 구금되어 있었던 기간은 45일이다), 실제로는 그 후에도 재심대상사건이 검찰에 송치되기 전까지 18일간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조사실에는 폐쇄회로 카메라가 설치되어 외부에서도 조사실 안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5) 연행 후 처음 약 1주일 동안 조사를 담당한 대공수사관은 원고 1로 하여금 잠을 자지 못하도록 하면서 출생 후 현재까지의 모든 행적에 대한 진술서 작성을 강요하였는데, 원고 1이 1954년 이후의 행적과 관련하여 자신은 위장귀순한 것이 아니고 간첩활동을 한 바 없다는 취지로 진술하자(연행 전 조사 과정에서도 아무런 혐의를 찾지 못한 상태였다), 당시 치안본부 대공수사1과 소속 경위였던 피고 2가 조사담당자로 투입되었다. (6) 그때부터 피고 2 등 대공수사관들(6명 가량이 조사에 참여하였는데, 피고 2가 조사를 주도하면서 아래와 같은 고문을 가하였다)은 원고 1에게 ‘소외 2가 재북처 아니냐, 너는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 근무하지 않았느냐, 남파간첩으로 활동하면서 군사기밀을 탐지한 내용과 동조자로 포섭한 사람들에 대해서 자백하라.’고 강요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위 원고의 손바닥, 발바닥, 양어깨, 가슴 등을 주먹과 발 및 몽둥이(피고 2 개인이 가지고 다니던 빨래방망이 모양의 것으로 ‘양심봉’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로 구타하고(구타한 부분을 볼펜 끝 뾰족한 부분으로 찌르기도 하였다), 잠을 일체 재우지 않고 의자에 앉힌 채 백열등을 들여다 보고 있으라 하고 졸면 몽둥이로 때리며, 양손을 등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운 상태에서 두 사람이 양쪽에서 붙잡고 욕조물 속에 머리를 밀어넣거나, 고문기구인 이른바 ‘칠성판’에 눕힌 채 몸을 묶어놓고 가슴에 올라타 얼굴에 수건을 뒤집어씌운 다음 샤워기로 얼굴 부위에 물을 흘려보냄으로써 호흡곤란 등으로 고통을 받게 하는 속칭 ‘물고문’, 칠성판 위에서 양발의 새끼발가락에 전선줄을 감고 군용전화기에 들어 있는 발전기를 이용하여 만든 기구로 온 몸에 전류를 흐르게 하여 통증을 느끼게 하는 속칭 ‘전기고문’ 등 고문을 가하였다(칠성판에 묶은 채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함께 가하였다). (7) 결국, 이를 견디지 못한 원고 1은 순차적으로 자신이 위장귀순한 고정간첩이라는 점, 군사기밀을 탐지하는 등 간첩활동을 하였다는 점, 남한정부를 비방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등 행위를 하였다는 점 등에 관하여 허위 자백을 하기에 이르렀는데, 피고 2 등이 추궁하는 부분에 관하여 원고 1이 자백을 하지 않으면 고문을 가하면서 ‘실토할테면 손가락을 움직여라.’고 하고, 이에 따라 원고 1이 고문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면 고문을 멈추고 수사관들이 요구하는 내용에 부합하는 구체적인 내용의 자술서를 쓰게 한 후(자술서를 쓰는 과정에서도 내용이 미진할 경우 다시 고문을 하였다.) 실황조사를 하는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8) 또한, 위 대공수사관들은 원고 1의 간첩활동 등을 알지 못한다는 가족, 친구 등에게 위 원고가 간첩활동 등을 자백하였다면서 강요하여 자백에 부합하는 진술을 받기도 하는 등 참고인들에 대한 조사를 하고(대부분 강제로 남영동 대공분실로 연행하여 조사를 하였다), 원고 1을 데리고 다니며 간첩접선 장소와 군사기밀을 탐지·수집한 현장에 대한 실황조사를 하는 등 원고 1의 허위자백을 보강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들기 위한 활동을 하였는데, 혐의를 만들어 나가다가 객관적인 사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이를 백지화하고 다시 새로운 혐의를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였다. (9) 대공수사관들은 위와 같이 각종 자료를 갖춘 후 1983. 4. 21. 재심대상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였는데, 송치 전날 피고 2는 원고 1에게 ‘내일 검사의 심사가 있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공소보류도 받을 수 있지만 만약 그렇지 않고 지금까지 조사받은 내용과 다른 말을 하면 다시 대공분실에 데려와 혼을 내겠다.’는 취지로 말하며 위협하였고, 송치 당일에도 피고 2 등이 직접 원고 1을 서울지방검찰청으로 데리고 갔으며, 같은 날 위 원고가 검사로부터 신문을 받을 때에는 피고 2를 비롯한 3명의 대공수사관이 검사실 내에 앉아 있었다. (10) 재심대상사건을 송치받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는 당일 원고 1에 대한 피의자신문을 하였는데, 위 원고가 피고 2의 고문 및 위협으로 인하여 임의성이 없는 상태에서 재심대상사건의 공소사실에 대하여 자백을 하자 그러한 취지가 기재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하였고, 1983. 5. 18. 공소를 제기하였는데, 원고 1은 공소제기 직전인 1983. 5. 16. 이루어진 제2회 피의자신문시부터 자신이 고문을 당하여 허위의 자백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하였고, 재판과정에서도 일관되게 같은 취지의 주장을 계속하였다. (11) 원고 1이 재판과정에서 위와 같이 공소사실을 부인하자, 피고 2 등 대공수사관들은 소외 1로 하여금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허위의 증언을 하게 하고,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은 사람들이 증언을 하게 되는 경우 미리 접촉하여 조사받을 때 진술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증언하도록 위협하며 진술서가 협박에 의해 작성된 것이라는 증언을 번복시키기도 하였다. (12) 또한, 피고 2는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증인으로 출석하여 1983. 12. 29.부터 1984. 1. 24.까지 사이에 3회에 걸쳐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내용과 자신은 원고 1을 고문한 바 없고, 실황조사는 원고 1의 동의하에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루어졌으며 검사의 신문시 입회한 바도 없다는 내용의 허위 증언을 하였고, 이러한 허위 증언과 피고 2 등 대공수사관들이 조작한 각종 증거들에 기초하여 원고 1에 대하여 재심대상판결이 선고되고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나. 판 단 (1) 대공수사관의 불법행위와 국가의 책임 여부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 2의 주도에 의하여 피고 대한민국 산하 치안본부 소속 대공수사관들이 대공수사 업무를 수행하면서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원고 1을 연행한 후 1983. 2. 18.경부터 1983. 4. 4. 이전까지 구속영장 없이 위 원고를 구금하고, 위 원고가 위장귀순하여 고정간첩으로 활동해 왔다는 점에 관한 아무런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위 원고에게 각종 고문을 가하여 그러한 내용의 허위자백을 하도록 하며(앞서 본 바와 같이 수사의 단초가 된 제보 내용에 의하면 그와 같은 의심을 품을 수 있었겠으나, 상당 기간의 미행·행적조사 및 연행 후 고문이 시작되기 전까지의 조사과정에서 그와 같은 의심을 뒷받침할 만한 아무런 자료가 나오지 않았고, 고문이 시작된 이후의 조사 경위에 비추어 보면 수사관들은 원고 1의 진술이 허위임을 명백히 알고 있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한 고문에 의한 임의성 없는 상태가 지속되도록 하여 검사의 피의자신문시에도 위 원고가 같은 내용의 자백을 하도록 하고, 진술을 강요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허위의 자료를 만들며, 피고 2가 재판과정에서 고문을 한 바 없다는 등의 허위 증언을 한 것은 모두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 대한민국은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기하여, 피고 2는 민법 제750조에 기하여 연대하여 위 행위들로 원고들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2) 수사검사 등의 불법행위와 국가의 책임 여부 원고들은, 재심대상사건을 송치받고 공판에 관여한 검사가 제2의 가.항에서 주장한 바와 같은 행위를 하였고 이는 불법행위임을 전제로 그에 대하여 피고 대한민국이 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주장한다. 검사는 수사 및 소추기관으로서 수집·조사된 증거를 종합하여 피의자가 유죄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정도의 혐의를 가지게 된 데에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판단될 때에는 소정의 절차에 의하여 법원에 공소를 제기하고 공소를 유지하기 위한 입증활동을 할 권한과 의무가 있으므로, 객관적으로 보아 검사가 당해 피의자에 대하여 유죄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후일 재판과정을 통하여 그 범죄사실의 존재를 증명함에 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그에 관하여 무죄의 판결이 확정되더라도, 검사의 판단이 경험칙이나 논리칙에 비추어 도저히 그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른 경우에만 국가의 배상책임의 근거가 되는 귀책사유가 있다고 할 것이다. 살피건대,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 2 등 대공수사관들이 고문 등 행위를 통하여 원고 1로부터 공소사실 전체에 대한 허위자백을 받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각종 증거자료를 치밀하게 조작하여 놓았던 상태였던 점(피고 2 등은 위 보강증거 조사를 잘 하였다는 이유로 상부로부터 치하 및 격려금을 받은 사정도 엿보인다.) 등에 비추어 보면, 갑 제1호증, 갑 제6호증의 6, 24, 갑 제7호증의 7, 9, 갑 제9호증의 10 내지 23, 27, 28, 30, 33, 40, 43, 45, 갑 제10호증의 15, 16의 각 기재만으로는 당시 재심대상사건을 송치받아 수사한 검사와 공소가 제기된 후 공판에 관여한 검사가 원고 1에 대하여 유죄의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 경험칙이나 논리칙에 비추어 도저히 그 합리성을 긍정할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다거나, 피고 2 등과 공모하여 불법수사를 은폐하며 증인으로 하여금 위증을 하게 하였다고 보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므로, 원고들의 이 부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3. 소멸시효와 관련한 주장에 대한 판단 가. 피고들의 주장 및 판단 (1) 피고들은, 원고 1은 수사가 종료되어 기소된 1983. 5. 18.경에는 불법체포·감금 및 가혹행위에서 벗어났다고 할 것이므로, 위 일시 또는 적어도 가석방된 1988. 8. 15.경부터는 민법 제766조 제1항에 정한 3년의 단기 소멸시효가 진행되기 시작하였고, 재심대상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1983. 4. 21.(피고 2의 주장), 또는 가석방된 1998. 8. 15.(피고 대한민국의 주장)부터는 민법 제766조 제2항 등에 정한 5년 또는 10년의 장기 소멸시효가 진행되기 시작하여, 이 사건 소제기 전에 시효가 모두 완성되었으므로, 원고들의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은 모두 소멸하였다고 주장한다(피고 대한민국은 원고 1이 재심을 청구한 2000. 9. 22.을 위 각 시효의 기산일로 주장하기도 한다). (2)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국가에 대한 청구권의 경우 5년( 예산회계법 제96조, 1989. 3. 31. 법률 제4102호로 전문 개정되기 전의 구 예산회계법 제71조), 그 밖의 경우에는 10년이 경과하면 시효로 소멸하는바( 민법 제766조 제2항), 앞서 인정한 바와 같은 피고 2 등 피고 대한민국 산하 치안본부 소속 대공수사관들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이 사건 소가 원고 1이 검찰에 송치된 1983. 4. 21. 및 앞서 본 피고 2 등의 불법행위 후 재심대상판결이 선고되고 확정된 때로부터 각 10년, 그 이후로 원고 1이 가석방된 1998. 8. 15.부터 5년이 경과한 2005. 10. 4.에서야 제기된 사실은 기록상 분명하므로, 원고들의 피고들에 대한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은 소제기 전에 소멸시효가 모두 완성되었다고 할 것이다. 나. 원고들의 주장 및 판단 (1) 원고들은, 소멸시효 제도의 본래 취지, 우리나라 헌법의 해석, 국내법의 효력이 있는 국제인권조약의 내용, 국가권력을 남용하여 저지른 중대한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의 의무와 피해자의 권리에 관한 국제법적 논의 등에 비추어, 그러한 중대한 인권침해에 해당하는 이 사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는 소멸시효 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나, 그와 같은 내용의 명시적인 입법이 없는 상태에서 법이 두고 있는 구체적인 제도의 적용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할 것이므로(이 사건과 같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하여 민사상 소멸시효를 배제하는 내용을 가진 국제법규로서 국내에서 효력이 있는 것을 찾아볼 수도 없다), 위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2) 원고들은, 피고 2 등이 가한 고문과 불법구금은 원고 1을 간첩으로 만들어 유죄판결을 받게 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불법행위이고, 이로 인하여 원고 1은 간첩으로 인정되어 유죄확정판결을 받고 장기간 복역하였으며 석방 후에도 유죄판결의 효력이 그대로 유지되었는바, 이처럼 불법수사로 인한 유죄판결의 효력에 의하여 원고들이 고통을 받는 상황에서, 그 유죄판결의 효력이 지속되는 한 원고들은 불법수사의 위법성과 그로 인한 자신들의 손해를 주장하여 그 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법률상 불가능하여 법률상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소멸시효의 기산일을 늦추어야 할 만한 성격의 사실상의 장애사유가 있었으므로, 재심판결이 확정되어 위 유죄판결의 효력이 소멸된 2005. 7. 23.까지는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원고들이 주장하는 위와 같은 사정은 법률상 장애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고, 그와 같은 사정으로 인하여 아래에서 보는 바와 같이 피고들이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하는 것이 권리남용에 해당하여 허용되지 않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소멸시효의 기산일이 늦추어진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위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원고들은, 대공수사관들의 위와 같은 불법행위를 인지하고서도 수사권, 기소권, 감찰권 등을 합리적으로 행사하지 않은 검사의 부작위는 계속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바, 피고 대한민국이 그 위법상태를 시정하기 위해 자신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행사하여 적극적인 행위를 할 때까지 소멸시효는 진행하지 않는다고도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위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3) 원고들은, 이 사건 불법행위의 성격과 그로 인한 결과 등에 비추어 피고들이 그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바, 이에 대하여는 아래에서 항을 바꾸어 살펴본다. 다. 피고들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이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여부 (1) 판단의 기준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도 우리 민법의 대원칙인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 원칙의 지배를 받는 것이어서, ①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거나, ② 채권자보호의 필요성이 크고, 채무이행의 거절을 인정함이 현저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하게 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등에는, 채무자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에 해당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 대법원 2002. 10. 25. 선고 2002다32332 판결 등 참조). 이러한 판단의 기준 아래, 이 사건에서 피고들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이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되지 않는지 여부를 살펴본다. (2) 인정 사실 갑 제1호증, 갑 제5호증의 8, 10, 11, 갑 제7호증의 1, 2, 6, 8, 10, 12, 을가 제1호증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면, 다음 사실이 인정된다. (가) 피고 2는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고문을 가한 고문기술자라는 사실과 함께 언론에 사진과 이름이 공개되자 1988. 12.경 도피생활을 시작하였는데, 그 후 원고 1은 자신을 고문하였다는 등 이유로 피고 2 등을 고소하였으나 1994. 7.경 이를 인정하지 않는 취지의 불기소결정이 내려졌다. (나) 피고 2는 장기간의 도피생활 끝에 1999. 10.경 자수를 하였고, 그 직후 원고 1에 대한 고문 및 재심대상사건에서의 위증 행위에 대하여 고발을 당하였는데, 검찰은 피고 2가 앞서 본 바와 같은 고문 및 위증을 한 것은 사실이나 1990. 3.경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는 이유로 1999. 12. 27. 불기소결정을 하였다. (다) 원고 1은 2000. 9. 22. 위와 같은 불기소결정의 내용을 근거로 서울고등법원에 재심대상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였는데, 2003. 10. 28. 재심개시결정이 내려졌고, 2005. 7. 15. 재심판결이 선고되어 그 무렵 확정되었다. (3) 판 단 앞서 본 사실들 그리고 아래 제4항에서 인정하는 사실들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되는 다음과 같은 사정, 즉 (i) 원고 1은 당시 국가의 주요한 권력기관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치안본부 산하 남영동 대공분실에 갑작스레 연행되어 죽음 직전에 이를 정도의 극심한 고문을 받은 끝에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허위자백을 하기에 이른 점, (ii) 위 원고는 피고 2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후 고문을 받아 허위의 자백을 하였다는 것을 알리면 간첩이라는 혐의를 벗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검찰의 수사 및 법원의 재판과정에서 그와 같은 주장을 계속하였으나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자신이 간첩이라는 것을 전제로 유죄로 인정하고 무기징역형을 확정하는 판결을 선고받기에 이른 점, (iii) 1988년경 사회 분위기의 변화로 피고 2가 고문기술자로 알려져 도피하기에 이르렀으나 무기징역형을 복역 중이던 원고 1의 신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1994년경 재심청구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하여 피고 2 등을 고소한 사건에서도 고문을 당하였다는 주장을 인정받지 못한 점, (iv) 1998. 8. 15. 가석방된 후에도 원고 1을 간첩으로 인정한 재심대상판결 등의 효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고, 간첩임을 전제로 보안관찰을 받게 된 점, (v) 원고 1은 피고 2의 고문 및 위증행위를 인정하는 내용의 검찰 결정이 있은 후 이를 근거로 재심을 청구하였는데, 그로부터 약 3년의 시간이 경과한 후에야 재심개시결정이 내려졌고, 그로부터 다시 약 1년 9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에 피고 2로부터 고문을 받아 허위자백을 하였고 각종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무죄를 선고받고 그 판결이 확정된 점, (vi)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으로 인하여 간첩은 다른 범죄인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일반인들에게 인식되어 있고, 십수 년 전에 대법원에서 간첩임을 전제로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유죄판결을 확정한 마당에, 당시 고문을 받아 허위자백을 하고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법원에 의해 받아들여져 간첩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지고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으리라는 것은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아 예상하기 어렵고, 원고들도 재심 결과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을지 여부에 관하여 의문을 가지고 초조해 했던 점, (vii) 피고 2를 비롯한 대공수사관들의 이 사건 불법행위는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채 국가시설 안에서 이루어졌고, 역시 주요한 국가기관인 검찰과 법원에서 고문을 당하여 허위자백을 했고 증거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아 법원에 의해 간첩임이 공인되고 무기징역형을 복역하게 된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법원으로부터 위와 같은 주장을 받아들이고 과거에는 누명을 쓴 것이라는 내용의 공권적 판단을 받기 전에는, 국가기관의 하나이기도 한 그 법원에 과거의 판단이 고문과 증거 조작에 의하여 잘못된 것임을 전제로 국가와 고문당사자를 상대로 그와 같은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를 제기한다는 것이 일반인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기대하기 어려운 점, (viii) 이 사건 불법행위 중 핵심인 피고 2의 고문행위(피고 2가 고문 실력으로 인하여 능력을 인정받았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는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채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1962년경부터 이미 우리나라 헌법에 금지 대상으로 규정되어 왔고, 국제적으로 그와 같은 행위에 대하여는 시효제도의 적용을 배제하는 등 법률적으로 특별한 취급을 하여야 한다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정도로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에 해당하며, 그로 인하여 원고들은 신체와 정신에 심대한 타격을 입고 현재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① 원고 1에 대한 재심판결이 확정된 2005. 7. 23.까지는 원고들이 피고들에 대하여 이 사건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는 객관적인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고, 또한 ② 위와 같은 피해를 당한 원고들을 보호할 필요성은 큰 반면, 피고들의 그에 대한 채무 이행 거절을 인정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고 불공평하다고 할 것이어서, 위 재심판결이 확정된 때로부터 3개월 이내에 소가 제기된 이 사건에 있어서 피고들이 앞서 본 바와 같이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완성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여 권리남용으로서 허용될 수 없다고 할 것이므로, 이에 관한 피고들의 주장은 결국 이유 없다. 4. 손해배상의 범위 가. 인정 사실 다음 사실은 갑 제3호증, 갑 제5호증의 3, 4, 6, 47, 49 내지 52, 갑 제6호증의 4, 갑 제7호증의 13, 15, 갑 제11, 12호증, 갑 제13호증의 1 내지 8의 각 기재에 변론 전체의 취지를 종합하여 인정된다. (1) 피고 2가 원고 1에게 가한 고문은 죽음 직전에 이르도록 하고 수사에 참여한 다른 수사관조차 옆에서 지켜보지 못하겠다며 퇴실할 정도로 극심하였고, 이어지는 재판과 수감생활로 인하여 원고 1은 이로 인한 후유증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였으며, 수감생활 중 양 다리의 이상, 당뇨, 지방간 등 질환을 앓았고, 현재에도 그 후유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2) 원고 1은 구속된 상태에서 약 7개월간 24시간 수갑을 한 채 생활하기도 하였고, 재심대상판결 확정 후 이른바 비전향수로서 각종 불이익을 받게 되자 1986. 6.경 사상전향서를 제출하여 전향자로 판정받았으며, 간첩이라는 이유로 문제수로 지정되어 독거수용되는 등 과정을 거친 끝에 아무런 이유 설명 없이 최초 연행된 때로부터 15년 이상의 시간이 경과한 1998. 8. 15.에야 가석방되어 구금상태에서 풀려났는데, 가석방된 후에도 재심판결이 확정되어 처분이 취소되기까지 보안관찰을 받았다(원고 1은 재심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확정된 후 1983. 2. 18.부터 1998. 8. 15. 석방되기까지 5,658일 동안 구금당하였음을 이유로 336,085,200원의 형사보상금 지급결정을 받았다). (3) 원고 1은 구치소에 수용된 후 약 1년간 고문을 받는 악몽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고, 가석방된 후 현재까지도 고문을 받는 악몽에 시달리다가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후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며, 고문과 오랜 시간 수감생활을 하였던 영향으로 가족 및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다(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해당한다). (4) 원고 2는 원고 1이 연행된 후 검찰에 송치되어 면회가 허용되면서 비로소 위 원고를 만날 수 있었고, 재심대상사건 재판과정에서 원고 1이 당한 고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으며, 재판 후 위 원고가 석방될 것으로 믿고 있다가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자 심한 좌절감을 느꼈고, 약 30세에 떨어져서 구금되어 있는 그의 뒷바라지를 하며 자신과 아들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고, 아들이 간첩의 자식이라고 따돌림을 당하는 것을 보며 자식들이 그로 인하여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늘 걱정하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원고 1이 석방된 후 현재까지도 그가 정신적·신체적 고문 후유증을 앓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리고 여전히 위 원고가 최초 연행된 후 있었던 일들을 연상하게 하는 물건을 보면 두려운 감정을 느끼며 생활하고 있다. (5) 원고 1이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후에도 원고 2는 주위 사람들에게 원고 1이 간첩이 아니라고 설득하였으나 가까운 가족들까지 ‘죄 없는 사람에게 사형을 구형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하겠느냐’며 외면하였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사정조차 말할 수 없었으며, 원고 3, 원고 4가 결혼할 때에는 혼주로 나서지 못한 채 큰아버지 부부를 부모로 내세워 결혼식을 치르기도 하였다. (6) 원고 3, 원고 4, 원고 5(최초 연행 당시 각 23세, 20세, 10세)도 아버지인 원고 1과 떨어져서 그가 고문을 당하고 간첩의 누명을 써 무기징역형을 받은 데 대해 심한 괴로움을 느끼고 간첩의 아들이므로 같이 놀지 말라는 등의 따돌림을 당하며 그로 인하여 영향을 받게 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면서도 누구에게도 이를 호소하지 못한 채, 주변에서 자신이 간첩의 자식임을 알게 될까봐 걱정하면서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피하고 원하는 직장에의 취직을 포기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여 왔고(재심판결이 확정된 후에도 여전히 그러한 영향이 남아 있다), 원고 5는 원고 1로 인한 상대 집안의 반대로 결혼을 두 차례 포기하기도 하였다. 나. 위자료의 액수 위 인정 사실에 앞서 본 불법행위의 내용 및 정도, 위 불법행위가 이루어진 때와 현재의 시간적 간격, 원고들의 관계를 비롯하여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보면, 원고들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로 원고 1은 7억 원, 원고 2는 4억 원, 원고 3, 원고 4, 원고 5는 각 1억 원을 인정함이 상당하다. 5. 결 론 그렇다면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 1에게 7억 원, 원고 2에게 4억 원, 원고 3, 원고 4, 원고 5에게 각 1억 원 및 위 각 금원에 대한 피고 2가 마지막 허위 증언을 한 1984. 1. 24.부터 이 판결 선고일인 2006. 11. 3.까지는 민법이 정한 연 5%, 그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정한 연 20%의 각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으므로, 원고들의 피고들에 대한 청구는 위 인정 범위 내에서 이유 있어 인용하고, 나머지 청구는 모두 이유 없어 기각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판사 강민구(재판장) 양은상 이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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