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권이전등기말소청구사건
72나1805
판시사항
임야에 대한 사패지지제도가 생겼던 시기
판결요지
이씨조선중기 이전까지는 임야의 사점을 금하여 이에 위반한 자에 대한 벌칙까지를 마련하였고, 공신에 대하여 왕이 임야를 하사하는 제도는 이씨조선중엽 숙종이후부터 그 실례를 볼 수 있었고, 그 이전까지는 공신이라 하여도 전, 답 및 노비에 한하여 하사하는 실례만 있었다.
참조조문
민법 제185조 , 제1조
판례 전문
【원고, 피항소인】 순흥안씨양도공파종회【피고, 항소인】 안일준【원심판결】 제1심 서울민사지방법원(70가8427 판결)【주 문】 (1) 원판결을 취소한다. (2) 원고의 주위적 청구(당심에서 추가적으로 변경)인 신탁해지에 인한 소유권이전등기청구를 기각한다. (3) 피고는 원고에게 (가) 서울 영등포구 시흥동 산야 17정 6단 6무 8보(등기부상 표시임. 실제의 지번, 지적은 서울 영등포구 시흥동 산 126 임야 17정 6단 6무)에 관하여 1915.5.8.자로 경료된 소외 망 안정료명의의 보존등기중 지분 5/6부분에 대한 보존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나) 위 부동산에 관하여 1970.5.20. 서울민사지방법원 영등포등기소 접수 제34834호로서 한 1952.11.28. 호주상속을 원인으로 한 피고명의의 소유권이전등기중 지분 5/6부분에 대한 이전등기의 말소등기절차를 (다) 위 부동산의 지분 1/6부분에 대하여 1968.4.5.자 신탁해지에 인한 지분권이전등기절차를 각 이행하라. (4) 1,2심의 모든 소송비용은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청구취지】 원고는 당심에 이르러 그 청구취지의 일부를 정정하여 주위적 청구로서 피고는 원고에게 위 주문 제3항에 기재한 부동산에 관하여 1968.4.5.자 신탁해지를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는 판결을, 동 주위적청구가 이유없을 경우 제1차 예비적청구로서 주문 제3항과 같은 판결을, 제2차 예비적청구로서 피고는 원고에게 위 부동산에 관하여 1922.3.31.자 취득시효완성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라. 소송비용은 모두 피고의 부담으로 한다는 판결을 구하였다.【이 유】 (1) 피고는 먼저 원고종회는 조직된 바 없으니 실존하지 아니하여 당사자능력이 없고, 그렇지않더라도 소위 안동준은 원고종회의 적법한 선출절차가 없었는데도 원고종중의 대표를 감칭하여 본소제기에 이르렀을뿐 아니라, 가사 동 종회의 대표자로 선출된 바 있더라도 이미 그 임기가 만료되었으니 어느모로보나 원고의 본소제기는 부적법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므로 살피건대, 원심증인 안경준, 동 안치호의 각 증언에 의하여 그 진정성립을 인정할 수 있는 갑 제1호증(규약), 같은 갑 제2호증의 1,2(각 회의록), 같은 갑 제19호증의 1,2(동국문헌록)의 각 기재에 동 각 증인의 증언 및 변론의 전취지를 모두어 보면, 위 안동준의 19대조인 안경공은 고려조 충목왕 정해생으로 이씨조선 개국시 큰 공을 세워 이태조 즉위년에 3등개국공신으로 서하여졌고 75세로 사망하자 양도공으로 증시되어 본건 임야(주문 제3항 기재)에 분묘가 설치되었던 바, 그후 동 양도공을 공동시조로 한 후손들은 동 양도공의 생전의 공덕을 추모하고 그 분묘를 수호관리하며, 친족간의 친목을 도모키 위하여 매년 음력 10.6.을 시향일로 잡아(1917년까지는 음력 10.15.이었던 것이 그 이듬해로부터 변경됨)분묘지에 모여 제사를 지내며 친족간의 제반사를 의논하는 모임을 가져오므로서 원고종회는 이러한 시조를 공동으로 한 혈족이 번창해짐에 따라 자연발생적으로 형성조직되어 당초(일본대정년도)에는 그 명칭을 시흥백사동종회라고 불렀었고, 근래에 이르러서는 지방별로 30개정도의 소종중이 형성되기에 이른 사실, 원고종회는 당초에는 특별한 규약등을 마련한 바 없이 양도공 시향일에는 별다른 소집절차가 없더라도 각 소종중에서 유사를 파견하여 종사를 의결, 집행하여 오는 것을 관례로 하였던 바, 1966.10.6.의 시향일에도 이러한 종전관례에 따른 유사 안학준등 30여명의 유사가 참석 만장일치로 갑 제1호증과 같은 규약을 제정하고, 그 규약에 따라 그 종회명칭을 현재의 원고종회로 하고 3년임기의 종회대표자로 위 안동준을 선출한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고, 이에 저촉되는 원심증인 안복의 증언은 위 각 증거에 대비하여 믿지아니하고 달리 위 각 인정사실을 뒤집을 증거가 없다. 그렇다면 원고종회는 당사자능력이 있는 사단으로서 안동준은 적법하게 대표자로 선출되었다 할 것이며, 동 안동준은 위 규약상의 임기가 종료된 자라 할지라도 그후 다른 후임자의 선출이 있다고 볼 자료가 없으니 동 후임자 선출시까지는 적법하게 원고종회를 대표할 수 있다하여야 할 것이므로 동 안동준을 대표자로 한 원고의 본소 청구는 적법하다 할 것이어서 피고의 본안전항변은 어느 것이나 그 이유없어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다. (2) 본안에 대하여 살피기로 한다. 임야 등기부상의 영등포구 시흥동 산야 17정 6단 6무 8보의 본건 부동산이 그 실제의 지번, 지적은 서울 영등포구 시흥동 산 126 임야 17정 6단 6무로서 이에 관하여 1915.5.8.자로 피고의 5대조인 소외 안정료명의의 보존등기가 경료되어 있고, 동 안정료가 호주로 사망후 대대로 호주상속이 되어 오다가 1952.11.28.자로 피고의 부 소외 안상목이 호주로 사망, 그 장남인 피고가 호주 및 유산상속인이 되므로서 1970.5.20.자로 본건 부동산에 관하여 위 안정료로부터 직접 피고명의로 호주상속을 원인으로 한 소유권이전등기가 경료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 사실은 당사자 간에 다툼이 없다. 나아가 먼저 원고의 주위적청구에 대하여 살피기로 한다. 원고의 이점 청구원인의 요지는 본건 부동산은 원고종중의 종손인 안치호의 19대조되는 위 양도공, 안경공이 이씨조선개국공신으로 서거한 뒤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사패지지로서 원고종중에서 이에 분묘를 설치하고 관리하여 온 종중소유 토지인 바, 1915.5.8. 조선부동산등기령에 의하여 등기할 당시 종중명의로는 등기할 수가 없어 편의상 당시 종중원으로서는 최고벼슬인 중추의관 정3품으로 재직하던 위 안정료명의로 등기를 경료하여 놓은 것이므로 본건 임야에 관한 동 안정료명의의 보존등기는 원고종중의 명의신탁에 의한 것으로서 원고종중은 그후 1968.5.4. 이미 동 안정료의 재산을 상속한 피고에게 동 신탁해지의 의사표시를 한 바 있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본건 임야에 관하여 동 신탁해지로 인한 소유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하여야 한다는 데에 있고, 피고는 이를 부인하므로 과연 본건 임야가 사패지지로서 1915.5.8 당시 원고종중이 소유하고 있었는지의 여부에 대하여 살피건대 이점 원고 주장에 부합하는 원심 및 당심증인 안치호, 원심증인 안상억의 각 증언은 다음에 드는 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실에 비추어 그대로 믿기어렵고, 그 이외에는 이점 원고주장사실을 인정할 자료를 발견할 수 없고, 도리어 당사자간 변론의 전취지에 의하여 그 진정성립을 인정할 수 있는 을 제9호증의 1,2(조선제사 상속법론) 같은 을 제10호증의 1,2(경국대전), 같은 을 제11호증의 1 내지 3(육전조례)의 각 기재에 당사자간 변론의 취지에 의하면, 이씨조선중기이전까지는 임야의 사점을 금하여 이에 위반한 자에 대한 벌칙까지를 마련하였고, 공신에 대하여 왕이 임야를 하사하는 제도는 이씨조선중엽 숙종이후부터 그 실례를 볼 수 있었고, 그 이전까지는 공신이라 하여도 전, 답 및 노비에 한하여 하사하는 실례만이 있었던 점을 알 수 있으므로 위(1)에서 인정한 바에 의하여 위 양도공이 사망한 것은 이씨조선초기인 태종시대였음이 분명하여 동 양도공 사망후 본건 토지가 사패지지로 하사되었다는 원고 주장사실과 이에 부합하는 위 각 증언은 믿을바 되지 못한다 할 것이므로 원고종중이 양도공 사망당시부터 본건 임야를 소유하다가 1915.5.8.에 위 안정료에게 신탁하였다고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할 것이니 이를 전제로 한 원고의 본건 주위적청구부분은 더 들어가 판단할 필요없이 그 이유없어 받아들일 수 없다. 다음 원고의 제1차 예비적청구에 대하여 살피기로 한다. 당사자간 그 진정성립에 다툼이 없는 갑 제4호증의 1·2(족보), 갑 제12호증의 1·2, 갑 제17호증의 1·2, 갑 제18호증의 1·2(각 족보), 갑 제20호증의 1·2(임야조사대장) 원심증인 안치호의 일부증언에 의하여 그 진정성립을 인정할 수 있는 갑 제5호증의 1 내지 4(알성도기 묘조, 축문, 백사동위토기) 같은 갑 제6호증(위토대장)같은 갑 제7호증의 1·2, 갑 제8호증의 1·2, 갑 제10호증의 1 내지 3, 갑 제11호증의 1·2, 갑 제13호증의 1·2, 갑 제14호증의 1·2, 갑 제15호증의 1·2, 갑 제16호증의 1·2(각 도기) 원심증인 안상억의 일부증언에 의하여 그 진정성립을 인정할 수 있는 갑 제28호증의 1·2, 갑 제29호증의 1·2, 갑 제37호증의 1·2(각 도기) 위 을 제9호증의 각 기재, 위 원심 및 당심증인 안치호, 원심증인 안상억의 각 일부증언, 원심에서의 현장 및 형사기록검증결과와 당사자간 변론의 전취지를 모두 보면 ①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개인소유권 개념이 도입된 것은 왜정시의 조선민사령, 조선부동산등기령(제령10호, 1911.3.시행)이 시행된 이후라 할 것이고, 그 이전에 있어서는 대체로 임야의 개인소유의 개념은 존재하지 아니하여 산야의 사점을 인정치 아니하였던 바, 한편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고래로 풍수지리설에 의하여 묘지선정과 조상에 대한 제사에 대하여는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던 것이므로 산야는 소위 무주공산이라하여 아무도 배타적으로 이를 독점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누구나 산야에 묘지를 선정하도록 맡겨졌던 것이며, 그 결과 묘지를 선정한 자는 자연히 이를 보호관리하기 위하여 묘직이를 두는 등 사실상으로는 거의 배타적으로 이를 점거하게 되고 권세가의 집안일수록 이러한 사례가 더욱 많았던 바, 더욱이 이조중엽이후 왕이 공신에게 산야를 사여하는 사례가 있은 이후부터는 권문세가의 후손들이 영달한 조상의 분묘를 산야에 설치하고, 그 분묘의 존엄을 유지하기 위하여 주위에 수목을 보육하고 타인이 그 부근에 분묘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특권을 사실상 누려왔고 왕도 사실상 이러한 특권을 묵인하므로서 위에서 본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근대적 소유권이 인정된 왜정시 그 이전에도 이러한 근대적 소유권 개념에 유사한 제도는 사실상 인정되었던 사실 ② 위 양도공은 위에서 본바와 같이 이씨조선개국 3등공신으로 동인 사후 그 후손들은 본건 임야에 동 양도공의 묘소를 설치하여 사실상 이를 배타적으로 점거하였고, 그후 본건 임야에는 동 양도공묘소이외에도 그 후손의 묘등 도합 17기의 분묘가 설치되어 위에서 본바와 같이 동 양도공을 시조로 한 원고종중원들이 적어도 1884년부터 매년 시제를 올리며 이를 관리하여 온 사실 ③ 우리나라에 부동산등기제도가 시행된 1911.3.(명치 44년 제령9호)이후인 1915.5.8.자로 위에서 본바와 같이 피고의 5대조인 소외 안정료명의로 본건 임야에 관한 보존등기가 경료된 바 있으나 동 안정료는 역시 위 양도공, 안경공의 후손으로 당시 종중원중 최고벼슬인 정3품의 벼슬을 한 자로서, 동 등기경료 후에 본건 부동산에 관한 종중의 관리를 배제하는등 이를 단독으로 소유관리하여 온 것은 아니고 종전과 같이 이에 대한 보존관리는 계속 원고종중이 하여온 사실 ④ 그후 임야조사령(1918년 5월 제령 5호) 시행으로 인한 임야세부측량당시 원고종중에서는 본건 임야를 종중소유로 사정받으려 하였으나 위 조선부동산등기령에 의하여 단체명의의 사정은 불가능하였으므로(그후 1930년 제령10호로 1930년이후부터 종중 등 단체명의등기가 가능케 되었음) 사정에 필요한 제반비용을 종중원등이 분담하여 본건 부동산에 관하여 1918.9.30.자로 위 안정료 동 안형중, 동 안홍중, 동 안일준, 동 안상용 등 6인명의로 사정받아 임야대장에 등재한 사실 ⑤ 위와 같은 사정이 있은 후로도 계속 원고종중은 관리인을 두는등 본건임야를 관리하여 오다가 1968.4.5.자로 위 안주열의 최종상속인으로서 당시 미성년자였던 피고 안일준의 친권자 조연식 및 위 나머지 사정명의자 5인의 각 최종상속인인 안상억, 안상윤, 안상우, 안병덕, 안병진(위 기재순대로의 상속인임. 최종 피상속인등은 모두 1960년이전에 호주로 사망)에게 본건 부동산은 원고종중의 소유인데 그 사정명의만을 신탁한 것으로 동일자로 이를 해지한다는 취지의 의사표시를 한 사실을 각 인정할 수 있고, 위 각 인정사실에 저촉되는 원심증인 조연식, 동 안일중, 동 김영조의 각 증언은 위에든 각 증거에 대비하여 믿지아니하고 달리 위 각 인정사실을 뒤집을 증거가 없다. 위 각 인정사실에 비추어 보면, 첫째로, 임야의 소유권은 그 사정에 의하여 확정되는 것이니 만큼 본건 임야에 관한 1915.5.8.자 안정료명의의 보존등기는 1918.9.30.자 위 안주열외 5인명의의 사정에 의하여 그에 저촉되는 부분은 원인무효의 것이라 할 것인바(대법원 1965.8.24. 선고 64다1193판결 참조) 동 안주열은 위 안정료의 호주상속인이므로 동 안정료명의의 보존등기중 지분 1/6부분은 사정과 부합한 것으로 유효한 것이지만 나머지 지분 5/6부분은 사정과 저촉되는 것이므로 원인무효의 것이라 할 것이고, 따라서 이어서 경료된 피고명의의 상속등기중 동 5/6지분에 관한 부분 또한 원인무효의 것이라 할 것이고, 둘째로, 본건 임야가 위와 같이 안주열외 5인명의로 사정된 것은 원고종중이 당시 본건 임야의 실체적 소유자로서 그 사정명의만을 동인등에게 신탁한 것이라 할 것이며, 따라서 1968.5.4.자 동인 등의 상속인등에게 한 신탁해지의 의사표시는 유효한 것이라 할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원고가 위 수탁명의자를 각 대위하고 있음이 변론의 취지에 비추어 분명한 본건에 있어서 피고는 위 안정료의 상속인으로서 원고에게 위 본건 임야에 대한 안정료명의의 보존등기중 5/6지분에 관한 보존등기의 말소등기절차와 피고자신명의의 위 상속등기중 동 5/6지분에 관한 부분의 말소등기절차를 각 이행하고, 이어서 본건 부동산의 1/6지분에 관하여는 1968.4.5.자 신탁해지를 원인으로 한 지분권이전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가 있다 할 것으로 이점 원고의 청구는 이유있다 할 것이다. (3) 따라서 원고의 주위적청구는 부당하여 기각하고, 그 제1차 예비적 청구는 정당하여 제2차 예비적 청구에 대하여는 판단할 필요없이 이를 인용하여야 할 것인바, 원판결은 원고의 주위적청구부분을 인용하여 이와 결론을 달리한 것이므로 부당하여 취소하고, 원고의 제1차 예비적 청구를 인용하기로 하며, 1,2심의 모든 소송비용에 관하여는 민사소송법 제96조 , 92조를 적용 피고에게 부담시켜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판사 문영극(재판장) 이원배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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