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헌법이론에서 ‘타자(他者)’의 복권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맥락에서―
The Rehabilitation of Others in the Modern Constitutional Theory
李國運(한동대학교)
6권 2호, 325~350쪽
초록
대내적으로 최고이고, 대외적으로 독립인 주권(sovereignty)을 구성하고, 그것을 기초로 국가를 재구성하는 것 이외에 중세적 ‘두 개의 칼 이론’(two swords theory)을 극복할 세속적 관념을 가지기 어려웠던 것이다.그러나 이처럼 하나의 방법이었던 주권국가/국민국가의 이론은 실증적 과학주의의 이름 아래 어느새 하나의 교의가 되고 있다. 실제로 증명할 수 있는 범위 내에 헌법의 근거를 묶어 두려는 과학주의의 논리와, 형이상학이든 자연법이든 실제로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을 논의의 범위에서 배제하려는 경험주의의 주장이 그 배후에 존재한다. 이로 인해, 대내적으로 최고이고, 대외적으로 독립인 주권의 소재지에만 헌법은 국한된다. 헌법이 주권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권이 헌법을 규정하게 되는 것이다.비록 언어와 종교와 역사를 공유하는 민족(nation)이라는 단위와 의도적으로 겹쳐져 있기는 하지만, 국경이라는 이름의 동그라미로 안과 밖을 구분하는 주권의 경계선은 기실 인위적인 것이다. 허나 그 인위적인 경계에 막혀 사람들과 사람들은 마치 서로의 아이덴티티가 근본적으로 다르기나 한 것처럼 서로를 대우하도록 요구받는다. 이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이다.그에 따르면 정치적인 것이란 곧 적과 동지를 나누는 것이다. 적은 결코 동지일 수 없으며, 적과 동지의 나눔으로 인하여 세계는 정치적으로 분할된다. 분할된 세계의 내부는 항상 단일하며, 그 외부 역시 단일하다. 내부는 단일한 주권국민들의 세계가 되고, 외부는 단일한 주권국가들의 세계가 되기 때문이다. 내부는 내부적 투쟁에 골몰하고, 외부는 외부적 투쟁에 골몰한다.양자의 연계는 근본적으로 거부되고, 어쩌다 한번씩 등장하는 예컨대, 망명정부, 무국적자의 현상들은 시간이 지나면 해소되어 버릴 일종의 마찰적 예외들로 치부될 뿐이다. 법공동체의 자격을 두고 주권국가/국민국가와 경쟁하는 모든 단위는 국가 속에 있든지, 국가 바깥에 있든지, 어느 하나만을 선택할 것을 강요받는다. 그러므로 결론은 명백하다. 적과 동지의 구분에 의하여 너와 나는 분리된다. 모든 사람들은 나(동일자)의 관점에서 너(타자)를 규정하고 분해하려고 달려든다.물론 국제연합(United Nations)이나 그 산하의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와 같은 것들을 지목하며 어떤 반론을 제기하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전제로서 하나의 세계정부를 구상하게 된다면, 그들은 자신들 역시 동일자중심주의라는 질곡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제국(the Empire)’을 말하면서, 맨 처음 한스 켈젠이 주장한 국제법 재판소들을 언급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가 아니었을까?攀 안토니오 네그리/마이클 하트, 제국, 윤수종 역, 이학사, 2001, 1장.攀攀
Abstract
The Rehabilitation of Others in the Modern Constitutional Theory
- 발행기관:
- 한국법철학회
- 분류:
- 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