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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백제연구2006.02 발행KCI 피인용 14

5세기의 高句麗와 倭國 -宋書 倭國傳의 倭武王 上表文에 나타난 '고구려 정토' 문제를 중심으로-

Koguryo and Wae at the Age of B.C.5 -focused on the subject of Koguryo invading shown in Memorial of Yamato King Mupertaining to story about Wae in Weseo-

서보경(東京大學)

43호, 1~23쪽

초록

高句麗와 倭國의 관계를 해명하기 위한 첫 단계로서 武의 '고구려 정토'의 실재성을 증명하는 기본 논거를 검토했다. 아울러, 검토 결과를 기반으로 하여 武가 對宋 교섭을 시도한 실제 의도를 규명하고자 했다. 우선, '蓋盧王의 상표문'에 제시된 고구려의 백제 침탈 '시기'라는 문제를 동시대 한·중 관계 사료와의 비교를 통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개로왕이 고구려의 침탈의 시점으로 '馮氏의 종말기'를 강조한 것과 '30 여년에 걸친 침탈상'을 강조한 것이 모두 북위를 대상으로 한 '외교적인 수사'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규명했다. 다음으로, 고구려를 둘러싼 동아시아 諸國의 움직임을 통해 백제와 왜국의 '군사동맹' 여부를 살펴보았다. 이 경우, 개로왕이 구상한 '反高句麗軍事同盟'의 구도가 南으로는 가야와 신라, 北으로는 물길과 북위에 이르렀음을 추론해 냄으로서, 倭國이 '反高句麗軍事同盟' 구도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음을 명시했다. 더구나, 5세기 초 이후에 전개된 고구려와 백제의 어떠한 전투에도 왜군의 개입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백제와 왜국이 고구려에 대한 '군사동맹'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무리가 따름을 확인했다.마지막으로, 두 가지 전제에 대한 검토에 기초하여 武의 對宋 교섭의 의도를 검토했는데, 상표문에 제시된 武의 요청 사항은 두 가지였다. 그 하나가 '고구려 정토'에 대한 원조였는데, 이것은 송을 둘러싼 당시의 주변 상황을 고려할 때 현실에 기반을 둔 요청이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다른 하나는 송 황제에게 將軍號와 官職號를 요청한 것이었다. 이 경우, 政變을 통해 왕위에 오른 武 즉 雄略天皇이 자신의 장군호와 屬僚의 관직호의 요청을 통해 왜국의 결속과 통합을 지향하고자 했음을 명확히 했다.위와 같은 검토는, 武의 對宋 상표문의 실재성을 논증해 온 기존의 두 가지의 논리-백제와 '군사동맹' 상태였던 왜국이 430년대 말 이래 고구려의 공격 대상이 된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고구려 정토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려 했다-가 내포한 문제점은 물론이고, '고구려 정토'를 주장한 武의 상표문 내용이 '고구려'와 '왜국' 관계의 실태를 나타낸 것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발행기관:
백제연구소
분류: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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