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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논문중국사연구2013.06 발행KCI 피인용 7

청프전쟁과 청일전쟁에서의 海戰 - 해양관련 국제법 사건을 중심으로 -

Naval battles during Sino-French War and Sino-Japanese War - Focusing on international maritime law incidents -

조세현(부경대학교)

84호, 213~248쪽

초록

이 글은 청프전쟁과 청일전쟁에서의 해전을 다루면서 주로 해양관련 국제법 사건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개별 사건들이 당시의 전시해양법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주목하였다. 두 전쟁 모두 해상분쟁에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본문에서 살펴보았듯이, 청프전쟁은 청이 국제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전쟁의 위기를 벗어나려했다. 따라서 해양관련 국제법 분쟁이 무척 다양한데, 마강해전, 대만봉쇄, 제3국의 중립문제 등이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마강해전은 프랑스가 국제법을 무시한 불법적인 군사행동에서 기인한 것으로 중국 근대해전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프랑스 함대는 국제법상의 “항구를 함부로 폐쇄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위반하고 무력으로 대만에 대한 항구봉쇄를 실행하였다. 이것 역시 전쟁규칙을 위반한 것으로 청의 주권이익뿐만 아니라 중국과 다른 나라와의 정상적인 왕래를 방해한 것이다. 그밖에도 제3국의 중립문제와 관련해서는 석탄제공, 무기구매, 선박수리, 통신지원, 외국인 도선사의 협조 등과 같은 다양한 갈등이 있었다. 한편 대외선전, 교민보호, 각국에 대한 중립요구, 전쟁포로 처리문제 등에서도 대립이 있었다. 청프전쟁 후 복건수사가 몰락한 후에는 북양수사가 청조 최대의 해군으로 발전했는데, 그들의 가상 주적은 일본이었다. 10여년 후 일어난 청일전쟁에서도 해양관련 국제법 사건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청일전쟁의 시작과 깊은 관계가 있는 고승호사건이다. 당시 영국선적의 고승호가 청에 고용되어 조선으로 군대와 군용물자를 운반한 것에 대해, 일본 측은 이 선박이 목적지를 향해 항해하는 것을 막을 권리가 있다고 보았다. 영국선장은 일본함장의 명령을 받아들이려 했으나 청군은 배의 통제권을 빼앗고 항복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였다. 하지만 양국이 선전포고를 하지 않은 상황에서 중립국 선박을 침몰시킨 것은 국제법 위반이었다. 그리고 황해해전 이후 북양함대의 기지였던 여순에서의 포로 및 민간인 학살이나 위해해전에서의 민간인 학살 역시 해양관련 국제법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이 전쟁 중에도 제3국의 중립문제가 발생하였다. 청일전쟁의 패배는 양무운동의 상징인 북양함대의 몰락을 가져왔으며, 주요 항구가 열강의 조차지가 되었다. 중국인들이 『만국공법』을 받아들인 후, 오래지 않아 이를 이상화된 국제법이나 이상화된 국제질서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공법을 公理로 인식한 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이홍장을 들 수 있다. 그는 국제법에 대한 기본지식이 풍부했으며, 나름대로 전시해양법을 엄격히 준수하고 기본원칙을 견지해 해전의 확대를 막으려 했다. 하지만 당시 국제법들은 통일되어 있지 않아서 강자의 입장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중국인들이 번역해 읽었던 국제법 저서들, 『만국공법』, 『공법편람』, 『공법회통』의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19세기 말 국제법이 “강자의 법”으로 청의 주권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은 청프전쟁과 청일전쟁을 통해 절실하게 깨달았다. 요컨대, 청 해군건설의 시작을 알렸던 대만사건 당시에는 국제법에 대한 무지로 인해 잦은 실수를 하는 단계였다면, 청프해전에서는 국제법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법 조항을 그대로 적용하면서 전쟁을 피하려다 실패하는 단계라고 볼 수 있다. 그 후 국제법에 막연히 의존하는 경향은 줄어들지만, 청일해전에서의 처참한 패배는 다시 한 번 “약소국에는 외교가 없다.”는 냉정한 국제정세를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Abstract

This study compared the naval battles during Sino-French War and Sino-Japanese War. The study also analyzed the international maritime law incidents during the two wars. There were large-scale naval battles during Sino-French War and Sino-Japanese War. In the Sino-French War, the naval force of Ching was unilaterally defeated by the attack of French fleet. Since this naval battle was the first modern naval battle for China, it has special meaning. The Sino-French War deepened the maritime awareness of Chinese because there were many incidents related to the international maritime law such as Majiang(馬江) naval battle, blockade of Taiwan and the neutrality issue of third party countries. The Sino-Japanese War broke out ten years after Sino-French War. There were several important and historical naval battles involving steel-clad ships and cruisers such as the Hwanghai(黃海) naval battle. There was also a dispute related to international maritime law during this battle such as Gaoshenghao(高陞號) incident. The Beiyang Naval Force(北洋海軍) was built by the stimulation of Sino-French War and Taiwan incident; however, the force collapsed as it lost battles of Sino-French War and major Chinese ports became the leased territories of world powers. China lost Sino-French War while trying to avoid war relying on international law. On the other hand, China learned from Sino-Japanese War that a war should depend on military strength rather than international law.

발행기관:
중국사학회
분류:
동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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