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해석문제를 둘러싼 일본 보수세력의 이념적 대립 - 1950년대 헌법해석논쟁을 중심으로 -
Ideological Confrontation on Interpretation of the Constitution in Japanese Conservatives : A Case Study of the Debate on Constitutional Interpretation during 1950s
김남은(고려대학교)
22권, 129~152쪽
초록
헌법해석문제를 둘러싼 일본 보수세력의 이념적 대립-1950년대 헌법해석논쟁을 중심으로- 김남은 일본 보수세력 내에서는 헌법 제9조를 둘러싼 여러 가지 논의가 존재했으며, 그것은 헌법 제9조가 자위를 위한 전쟁까지 부정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었다. 누구보다 미국과의 ‘협조’를 중시한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는 헌법 제9조가 자위를 위한 전쟁까지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대미자주 노선의 대표적인 정치가로 꼽을 수 있는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郎)와 아시다 히토시(芦田均) 등은 자위권이 합헌이라고 주장하였다. 헌법 제9조의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위권에 관한 논의가 가능하게 된 배경에는 헌법 제9조 제정 당시의 ‘아시다 수정’에 기인하는 바가 크며, 적어도 전쟁의 완전한 포기를 강요했던 미국 측의 요구에 헌법 제9조에 대한 해석의 모호함으로 대응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아시다 수정’은 ‘자주외교의 대한 희구’로부터 동기화되어진 측면이 크다. 그러나 냉전의 심화에 따른 미국의 대일정책은 일본의 재군비 요구로 이어졌으며, 줄곧 자위대가 ‘유해무익’하다고 주장해왔던 요시다는 기존의 자신의 입장을 바꾸어 자위권을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요시다의 외교적 선택이었던 1951년 9월에 체결한 미일안보조약은 헌법과 미일안보관계 속에서 결정적인 자기모순을 내포하는 것이었으며, 이것이 헌법해석을 둘러싼 보수세력 간의 논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보수세력 내 이념적 대립에도 불구하고 아시다의 ‘의도’는 미일안보조약이라는 형태로 요시다에 의해 달성되어졌으며, 그리고 그것이 헌법 제9조에 대한 유연한 해석으로 인해 가능했다는 점에서 볼 때, 대미 ‘협조’와 ‘자주’가 반드시 상호배타적인 것만은 아니며, 오히려 상호보완적으로 전후 일본의 안전보장문제를 규정하고 있는 측면도 존재하고 있다.
- 발행기관:
- 한일군사문화학회
- 분류:
- 기타군사학